[한스 멤링] 성인들과 의뢰인과 함께한 성모자 (세 폭 제단화)
한스 멤링
Hans memling
성인들과 의뢰인과 함께한 성모자 (세 폭 제단화)
1474 - 1480

떡갈나무 목판 유채
중앙패널 71x70 cm
날개 패널 각각 71x30 cm
1957년 입수

13세기 성화 중에서 제단화가 주목할만큼 두드러졌고 한발 더 나아가 이 작품처럼 병풍모양으로 접을 수 있게끔 만들기도 했다. 성모의 오른편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웨일즈의 궁정 귀족인 존 돈으로, 이 작품의 외뢰인이기도 하다. 그 왼쪽에 서 있는 성녀 카타리나는 순교의 상징인 칼을 내밀고 있다.

성모의 왼편으로는 존 돈의 부인인 엘리자베스와 성년이 된 딸 앤이 보인다. 그 곁의 성녀 바르바라는 성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감금했던 탑을 손에 들어 보이고 있다.

존 돈 부부는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던 요크 당의 상징인 황금 장미가 달린 목걸이와 에드워드 4세로부터 받은, 사자가 조작된 십자 훈장을 두르고 있다.

양쪽의 날개 패널에는 외뢰인의 영명 축일을 기념하여 성 요한과 세례자 요한을 그렸다. 세례자 요한 뒤에 보이는 인물은 화가 자신일 것이다 (한스 멤링은 독일인이었지만 브뤼헤에 스튜디오를 가지고 그곳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화풍은 피렌체 풍에 가까웠다)
넓은 복도는 넘치는 빛으로 채워서 연출하였다. 지평선 끝에서부터 시작된 빛은 널리 퍼져서 교차하다가 충돌하며, 그림의 정면부에서 드라마틱한 빛과 어슴푸레한 그늘의 분리를 강조하였다.
한스 멤링(Hans Memling) (Memlinc; c. 1430 - 1494 년 8 월 11 일)

한스 멤링(Hans Memling) (Memlinc; c. 1430 - 1494 년 8 월 11 일)은 초기 네덜란드의 독일-플랑드르 화가입니다. 라인 강 중부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아마도 마인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입니다. 화가로서의 견습 기간 동안 그는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Rogier van der Weyden의 브뤼셀 작업장에서 보냈습니다. 1465 년에 그는 브뤼헤 시민이 되어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이자 대규모 작업장의 주인이 되었고, 1480년의 세금 문서를 보면 가장 부유한 시민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멤링의 종교 작품에는 종종 그의 후원자였던 성직자, 귀족, 버거(burgher - 은행가, 상인, 정치인 : 근대 초기 유럽의 중세 도시의 특권 시민의 계급 또는 직함)의 기증자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Memling이 젊었을 때 배운 스타일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는 1470년에서 1480년 사이에 안나 드 발케네르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멤링의 예술은 19세기에 재발견되어 널리 인기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