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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ᴀᴛɪᴏɴᴀʟ ɢᴀʟʟᴇʀʏ

런던 내셔널 갤러리

by 힐데가르트 2022. 2. 26.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예술품이자 취미이고 즐거움입니다. 삶을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치유와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현대에는 일반 서민들이 예술품을 자유롭게 감상하지만, 과거에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회화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한 첫번째 미술관은 아니었습니다. 18세기 중엽 가톨릭 교황들은 자신의 화랑을 개방했고, 나폴레옹 역시 루브르 개관을 착수했습니다. 그렇지만 내셔널 갤러리는 공공서비스 개념을 지닌 첫번째 미술관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의 시선으로 설립 의도를 본다면, 분명 파격적이었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술가의 육성이나 교양있는 계층의 고상한 취미 뿐 아니라, 개인이 컬렉션을 소장할 수 없는 서민 계층의 예술적 향유가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입 허가증을 필요로 하지않는 무료입장 원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공의 목적을 지닌 예술의 대중화일 것입니다.



1800년대 초엽에는 대부분의 미술관에 입장하기 위해서 격식있는 복장을 갖추어야 했고, 때로는 관람 자격을 갖추었는지 판별하기 위해 간단한 시험까지 치루었습니다. 미술관 관람을 위해 교양 시험까지 봐야 했다니, 일반 서민이나 평민들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셔널 갤러리의 특별함은 당시 행해지던 이 모든 형식과 절차를 벗어던졌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입장하도록 허가한 최초의 미술관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하인을 두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아이들을 대동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내셔널 갤러리는 관용과 교육적인 의도에도 불구하고 종종 미치광이에 도둑 방문객에 의해 돌발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여성 해방주의자들의 단검 난도 사건 - 벨라스케스의 <거울 속의 비너스>가 훼손되어 지금도 육안으로 식별 불가
■ 정신질환자 퇴역 군인의 총기난사 사건 -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 안나, 성 요한과 함께 한 성 모자>
■ 신사 도둑의 그림탈취 사건 - 프란치스코 고야 <웰링턴 공작의 초상> - 후에 경찰청으로 인도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예술작품 훼손을 염려하여 스코틀랜드 동굴에 숨겨 세심한 관리를 했고, 전쟁 이후, 영국은 경제 재건에 열중하는 대신, 예술작품에 대한 세금편성을 가장 우선시 하는 법률제정을 합니다. 이것은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시민이 함께 이루어낸 파이널 액트 법률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지 버몬트 경의 말을 끝으로 앞으로 소개할 내셔널 갤러리의 서문을 열어 봅니다.

 

「 대중은 이미 예술 작품을 전문가들의 장난감이 아닌, 일반인을 위한 구체적 관심의 대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 조지 버몬트 경, 미술품 수집가, 미술상 1823년 런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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