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네
Giorgione
시인에게 바치는 경의
Homage to a Poet (1500년경)
이 작품의 소재는 성서, 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일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나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좀 더 신빙성 있는 견해로는 황금 시대의 신화에서 지배자인 평화의 신의 강림이라는 설이 있다.
같은 숲 안에 사슴, 공작, 표범이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이 이를 설명해 준다. 복잡한 의미를 가진 이 그림을 두고, 최근에는 시인(시, 문학)에 대한 존경을 여러 형태로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실,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은 단지 누각처럼 보이는 파라솔뿐만 아니라 장벽을 이루고 있는 월계수의 보호도 받고 있는데, 원계수는 시와 예술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시인을 향하여 한 소년이 서있고, 그 아랴 무릎을 꿇고 있는 인물은 잔에 담은 코파(소시지의 일종)와 다른 선물을 바치고 있다. 또 책들이 흩어져 있는 연단의 계단에 앉아있는 사람은 류트를 연주하고 있다.
이 그림에 얽힌 또 다른 의혹으로는 이 그림이 정말 조르조네가 그린 것인가 하는 점인데, 조르조네의 열렬한 숭배자가 그의 화법을 흉내내어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
이 작품은 또한 카스텔프랑코의 스승이었던 거장의 화법과 양식이 매우 흡사하다. 무미건조하고 비대칭적인 구성과 애정을 들여 제작했음이 분명한 강한 자연주의적 성격에서 특히 그러한 점이 잘 나타난다.
바위 구덩이의 그늘진 곳에 은둔자의 작은 형성이 보인다. 새들이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모습은 오늘날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에 있는 보쉬의 세 폭 제단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리마니 컬렉션(베네치아의 그리마니 형제가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에 기증한 미술 컬렉션) 중 현재까지 내려오는 원작으로 조르조네가 직접 제작하여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원작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로는 조르조네가 가장 우세하다. 최근 전문가들은 이 작품의 제작연도를 1500년으로 추정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가설, 즉 이 작품의 제작연도가 조르조네의 사망 후인 1510년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작품은 문학, 특히 예술의 시정(詩情)을 칭송하고 있는데, 어찌 되었건 조르조네가 즐겨 그렸던 분야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도상학적 요소들이 그림의 해석을 돕고 있다. 제우스와 그 아들들이 지배했던 황금시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젊은 플라톤이 남동생(류트를 연주하는)과 아버지(잔을 바치고 있는)와 함께 저명한 시인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조르조네(Giorgione : 본명 조르지오 바바렐리(Giorgio Barbarelii), 1477 또는 1478년 ∼ 1510년)
전성기 르네상스의 베네치아에서 활동 한 이탈리아 화가다. 본명은 조르지오 바바렐리 다 카스텔프랑코 (Giorgio Barbarelli da Castelfranco)이다. 형용하기 어려운 시적 작풍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히 조르조네의 그림으로 간주 된 작품은 불과 6 점 밖에 현존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인물과 작품의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조르조네는 서양 회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수수께끼로 가득 찬 화가 중 한 명이다.
조르조네의 생애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화가 조각가 · 건축가 열전」에 의하면, 조르조네는 베니스에서 40km 정도 내륙에있는 카스텔 프랑코 붸네토(이탈리아어: Castelfranco Veneto) 출신으로 되어있다. 조르조네는 몇 살 즈음에 베네치아로 이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작풍에서 17 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 전기 작가 카를로 리도루휘 (Carlo Ridolfi)로 추측하고 있는 바와 같이,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 년 경 - 1516 년)의 밑에서 수행했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그 조르조네는 평생 베니스에서 보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조르조네의 재능은 젊은 시절부터 주목 받고 있었다. 1500 년 바사리의 설명이 옳다고 하면 불과 23 세 때 베네치아 원수 (Doge; 베니스의 총독) 아고스티노 바루바리고(Agostino Barbarigo, 1420 년 - 1501 년) 와 용병 대장 보 훼란테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꼽히고 있었다
조르조네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로, 그 작품은 호소력과 창의성 넘치는 아름다움이 시적 애수가 감도는 작풍이었다, 당시의 베네치아 인에 의한 기록이 존재한다. 그 기록은 20 년 전 레오나르도가 토스카나 회화 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은 것처럼, 조르조네의 작품이 베네치아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화가로 평가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고전적인 경직된 표현에서 회화를 해방시켜 더 활달하고 숙련 된 예술로 이끈 화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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