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디 코시모
Piero di Cosimo
프로크리스의 죽음
Death of Procris (1495년경)
이 그림은 크기로 보아 긴 의자 또는 피렌체풍 혼례품 상자를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내용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실려 있는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이야기이다.
프로크리스는 케팔로스의 정절을 의심하여 나무 뒤에 숨어 그를 지켜보는데, 케팔로스는 그녀를 짐승으로 오인하여 그녀가 그에게 개와 함께 선물한 마술의 창으로 죽이게 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는 케팔로스가 사티로스였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사티로스가 니콜로 다 코레조의 희곡에 등장한 이래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을 매혹시켜 신화를 소재로 한 회화에 종종 나타난다.
옅은 푸른색의 지평선까지 펼쳐진 초록빛 배경은 순간 정지하여, 우울하고 서글픈 침묵만이 사티로스와 개의 주변을 감싸고 있다. 그 어떤 것도 푸른 꽃밭에 뉘어진 연약한 시신의 침묵을 깨트릴 수 업슬 것처럼 보인다. 여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치명적인 상처도 단지 목과 가슴, 그리고 꺽인 팔에 가늘게 새겨진 두 개의 줄로만 표현되었을 뿐이다.
유채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얇고 투명하다. 그림 뒤쪽으로 보이는 입을 벌린 늑대를 둘러싼 개들의 모습은 아래쪽 광경을 예견하듯 무심히 표현되었다.
개는 투창과 함께 다이아나 여신이 프로크리스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프로크리스는 이 두가지를 케팔로스에게 다시 선물했다. 이 그림에서 케팔로스는 단지 짐승의 형상이 아니라 예전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그려져있다.
혼수품에 이러한 그림을 넣은 이유에 대해 죽음을 초래한 질투의 위험에 대하여 신혼부부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연극은 카스텔로 에스텐스 (Castello Estense)의 결혼 잔치에서 초연되었으며, 오비디우스의 <변신>보다는 플라우투스에 의해 원본과 달리 행복한 결말로 각색된 것이다.
또한 이 그림은 연금술의 상징으로 가득차 있다. 신화속 이야기에는 반인반수는 등장하지 않지만 코시모가 연금술의 상징으로 일부러 그려 넣은 것이다. 연금술에 빠진 코시모는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야생에 매우 강하게 끌리는데, 케팔로스의 하체가 사슴일 뿐 아니라 얼굴도 동물에 가까우며 염소의 귀와 뿔까지 갖추어 그리스 신화속 목신인 판을 연상케 한다.
죽어가는 프로크리스의 육체는 황금과 붉은 천으로 감싸여 있다. 그것은 붉고 뜨거운 현자의 돌을 상징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안타깝게도 '현자의 돌'인 그녀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깨 근처에는 새로운 생명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나무는 현자의 돌에 의해 새로 태어난 생명을 상징한다.
케팔로스의 사냥개 하나는 프로크리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관조적인 태도로 내려다보는 가장 큰 개이며, 또 하나는 흰 개와 검은 개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개이다. 이 두 사냥개는 위대한 연금술사 헤르메르를 상징하며,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죽음의 안내자이자 연금술의 위대한 스승을 나타낸다.
피에로 디 코시모 (Piero di Cosimo)
피에로 디 코시모 (Piero di Cosimo, 1462년 1월 2일 - 1522년 4월 12일)의 본명은 피에로 디 로렌조(Piero di Lorenzo)이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였다. 활동 이름은 스승 코시모 로셀리의 이름에서 따 왔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주의 주도 피렌체(Firenze)에서 태어났으며, 이 곳에서 죽었다. 로셀리의 제자였으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230) ⋅ 리피(321) ⋅ 시뇨렐리(683) 및 플랑드르(Flandre)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고대 설화에서 착상한 기괴한 형상과 곡선이나 강한 색채를 사용하여 초현실주의적 환상이 풍부한 세계를 표현한 신화화로 알려졌으며 초상화에도 뛰어났다. 초상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Giuliano de’Medici, 1453~1478)의 미망인 시모네타 베스푸치(Simonetta Vespucci, 1454∼1476)의 흉상을 그린 기념 초상화 [아름다운 시모네타(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1480년)이다.
1481년 코시모 로셀리와 함께 로마 바티칸 궁전(Vatican Palace)의 시스티나 예배당(Cappella Sistina)에 프레스코(fresco, 소석회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물기가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그림) [산상 설교(Sermon on the Mount)] ⋅ [홍해를 건넘(Crossing of the Red Sea)]을 제작하였다. 거기에서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의 프레스코를 보았는데, 초기 작품 [이아손의 이야기(Story of Jason)](1486년)에서 그들의 영향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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