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Tiziano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Bacchus and Ariadne (1520-1523)

캔버스 유채
175 x 190 (cm)
1826년 입수
이 작품은 페라라 공작 알폰소 데스테가 '석고의 방'으로 알려진 자신의 집무실을 장식하기 위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다른 에피소드들, 벨리니의 1514년 작인 <신들의 축제> (미국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 티치아노의 <비너스에 바치는 대주연>(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과 함께 의뢰한 작품이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캔버스화는 오비디우스와 카툴루스(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시인)에서 발췌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낙소스 섬에서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갑자기 나타난 만취하여 춤추는 바쿠스의 행렬에 놀라는데, 바쿠스는 마치 그녀의 남편처럼 나타나 왕관을 하늘의 별로 바꾸고 있다. 행렬의 모든 인물들은 축제에 참여하여 바쿠스의 의식을 함께 거행하고 있다.
쳄발로를 들고 춤추는 여사제(중앙 오른쪽), 뱀에게 휘감긴 켄타우로스(중앙 오른쪽), 또 다른 켄타우로스는 짐승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오른쪽 끝). 자신의 나귀와 함께한 실레노스(숲의 신. 바쿠스의 양부), 절단된 어린 소를 잡아먹는 목신은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티치아노는 바쿠스가 금마차에서 도약하는 순간을 포착했는데, 여기에서 삶과 그림에 대한 작가의 사랑에서 비롯된 엷고 빛나는 색조의 활기찬 대소동을 볼 수 있다. [다니엘라 타라브라]


아리아드네(왼쪽 끝) 위의 하늘에는 그녀의 왕관이 나타나 있는데, 이 왕관은 바쿠스가 하늘에 던진 것으로, 왕관자리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림에 묘사된 사건을 설명하는 분석 중 하나일 뿐이다. 내셔널 갤러리의 웹사이트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포도주의 신 바쿠스가 오른쪽의 풍경에서 자신의 추종자와 함께 나타난다. 보기에 아리아드네에게 사랑에 빠진 그는 치타가 끄는 자신의 전차에서 그녀를 향해 뛰어내린다. 아리아드네는 그리스의 섬 낙소스에서 테세우스에게 버림 받았는데, 멀리에서 떠나는 그의 배가 보인다. 그림에서는 그녀가 바쿠스를 처음 보고 겁을 먹고 있지만, 바쿠스는 그녀를 하늘로 올려주어 그녀의 머리 위로 묘사된 별자리가 되게 한다.'

대각선으로 그림을 두 삼각형으로 나눈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한 구획에는 푸른 하늘 (값비싼 청금석 도료 사용)에서 연인이 서로를 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다른 구획에는 소란스러운 움직임과 초록/갈색 색상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뱀에 감겨 날뛰고 있는 바쿠스의 추종자는 당시 로마에서 발견된 고대 조각상 《라오콘과 그의 아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꼬마 사티로스를 향해 짖고 있는 킹 찰스 스패니얼(중앙 하단)은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모티브로, 왕실의 애완견으로 길러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가의 서명 (TICIANVS)이 새겨진 황금 항아리는 공작의 소장품인 고대 유물 중의 하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담무쌍한 젊은 신은 사랑하는 아리아드네를 잡기 위해 마차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포도 넝쿨로 만든 머리 관과 나부끼는 포도주빛 망토는 바쿠스의 상징 표식이다. 신화의 한 장면이 티치아노의 손에서 활기차고 밝게 빛나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고대신의 모험을 암시하는 한 쌍의 표범이 바쿠스의 마차를 끌고 있다. 이 그림은 페라라 대공 알폰소 데스테를 위해 제작한 <바쿠스 신의 축제> 연작물 중 세 번째 작품이며, 티치아노 특유의 활기와 진동하는 듯한 색채 효과로 바쿠스다운 광란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반인반수의 괴물인 켄타우로스가 바쿠스 행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의 위엄을 보여주는 의식에는 항상 코브라가 등장한다. 이러한 모티브는 종종 파충류가 인간의 몸을 휘감은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티치아노가 표현한 켄타우로스의 형상은 라오콘 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라오콘 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라오콘 상은 1506년 로마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1488~90 - 1576) |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화가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자화상(Autoritratto)
캔버스에 유채, 96x75cm, 1562
베를린국립미술관(Staatliche Museen zu Berlin) 소재
티치아노는 하급 공무원 Gregorio di Conte dei Vecelli 와 아내 Lucia 의 아들로, 베네치아 북쪽 알프스 산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 Pieve di Cadore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형 프란체스코와 함께 모자이크의 대가 Sebastiano Zuccato의 견습생이되기 위해 베니스로 떠났으나, 곧 벨리니 가족의 공방으로 옮겨 당시 베네치아의 미술계를 이끌던 화가 젠틸레 벨리니와 조반니 벨리니에게 그림을 배웠다.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베네치안 스쿨(Venetian school) 등으로 불리는 베네치아 화파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은 전 유럽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작 <우르비노의 비너스(Venus of Urbino)>, <천상과 세속의 사랑(Sacred and profane love)> 등
티치아노는 본래 베네치아 태생이었지만, 그 활동 영역이 유럽 각지에 걸쳐져 있었던 세계 최초의 국제 화가였다. 피렌체 회화와 쌍벽을 이루는 베네치아 회화의 최고 대표 작가로서 그는 독특한 유화 기법으로 자신만의 경지를 개척했다. 그 뛰어난 화풍 덕에 각국 군주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스페인의 카를 5세는 물론이고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를 비롯해 여러 굵직굵직한 군주들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아 일감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 명성이 얼마나 자자한지 위로는 황제와 왕들부터 아래로는 총독, 제후들에 이르기까지 권력 깨나 쓰는 이들이라면 티치아노에게 의뢰하려 안간힘을 썼으며 실제로 지금 남아있는 작품들도 대부분 그와 관련된 것들이다.
신성 로마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이던 카를 5세의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는데 그림을 그리던 중, 실수로 붓을 떨어트렸다고 한다. 티치아노가 붓을 다시 주우려 했으나 카를 5세가 먼저 주운 다음, 티치아노에게 건넸는데 이때 "티치아노 자네 정도면 황제의 시중을 받을 자격이 있지"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일화는 지금까지도 줄곧 미술가들에게 후원자의 가장 모범적인 전형으로 통하고 있다. 카를은 티치아노를 극진히 총애하여 화가인 그에게 기사 작위와 백작 작위까지도 수여했다. 이렇듯 티치아노는 회화의 불모지인 스페인의 예술 환경을 대폭 업그레이드시킨 1세대 화가로서 후대 스페인 화가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으며, 피터 폴 루벤스를 비롯한 바로크 화가들은 국적을 초월하여 이 티치아노를 자신들의 교범으로 삼고 흠모했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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