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ɴᴀᴛɪᴏɴᴀʟ ɢᴀʟʟᴇʀʏ

[얀 베르메르] 스피넷 앞에 앉아있는 젊은 여인

by 힐데가르트 2022. 11. 14.

얀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스피넷 앞에 앉아있는 젊은 여인
A Young Woman seated at a Virginal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빛. 일상적 삶의 모습을 마치 사진기처럼 묘사하는 세밀함. 또한, 그 속에 숨겨놓은 함축된 사연까지. 얀 베르메르의 그림은 그렇게 정적이면서도 위트 있는 멋을 자랑한다. 또 그는 작품을 천천히 그리는 화가로도 유명한데, 생전에 그림을 30여 점밖에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몇 안 되는 작품 중 ‘버지널 앞의 젊은 여인’에는 베르메르식 화법이 농축되어 있다.

 

Oil on Canvas _ A Young Woman seated at a Virginal is a painting by Johannes Vermeer

 

캔버스 유채

51.5 x 45.5 cm

1910년 입수

 

 

이 작품은 "스피넷 앞에 서 있는 여인"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두 작품은 동일한 공간과 비슷한 소재로 이루어져 있으며, 프랑스의 미술 평론가인 테오필 토르 뷔르거의 콜렉션에 속해 있었다. 1866년 베르메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때까지 약 2세기 동안 무수한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 잊혀져 있었다.

메르메르의 명성은 약 30점 정도의 소수의 작품들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 작품들은 그가 태어난 도시인 델프트에서 세심한 표현 기법을 통해 제작되었다. 베르메르는 화가인 동시에 여인숙 주인이자 예술상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들에는 대체로 서 있는 여인들이 등장하며, 1400년대 플랑드르 회화, 특히 반 에이크의 모든 사물을 뒤덮는 빛의 사용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는 당시의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회화를 모두 이해하고 그 둘을 시대에 맞게 혼합하였다. 이러한 기법은 당대의 부르주아들이 선호하던 양식이기도 했다. 측면에서 들오으는 빛은 배경의 금빛 액자부터 여인이 입고 있는 드레스의 푸른색 비단 주름과 왼편에 드리워진 아라비아풍의 커튼에 이르기까지 기하학적으로 세말하게 묘사된 모든 사물들을 완전하게 비추고 있다.

 

 

 

시각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한 스피넷(하프시코드와 비슷한 악기) 또는 버지널(쳄발로처럼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상자 모양의 악기)이라고 불리우는 악기는 장식적인 목적으로 그려졌다. 화가는 이 매력적인 악기를 한스 루케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제작했던 유형으로 그렸다. 이 그림은 안베르사의 수집가이자 악기 감정인이었던 디에고 두아르테가 의뢰했을 가능성이 높다.

 

 

모든 사물들은 그 고상함과 우아함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상세하게 표현했다. 스피넷의 다리는 마치 대리석처럼 윤이 나도록 칠했고. 기대놓은 비올라를 따라서 따뜻한 빛이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여인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가지게 한다. 여인은 이제 막 음악을 연주하려 한다. 앞에 첼로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걸 보니 같이 연주할 연주자나 음악교사를 기다리는 게 분명한데, 웬일인지 기다리는 그녀의 표정이 처연하다. 단순히 연주가 따분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서가 아닌 듯, 숨겨진 사연을 궁금케 하는 얼굴 뒤로 그녀가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것처럼 그림이 한 장 걸려 있다.

여인은 마치 관람객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를 그림 속으로 끌어 당긴다. 그녀의 어깨 뒤로 보이는 '그림 속 그림'은 원작자를 추정할 수 있다. 이 그림은 디르크 반 베버렌이 카라바조 화풍으로 그린 (창부의 유혹)이며, 현재 보스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얀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또는 Jan Vermeer, 1632년 10월 31일 ~ 1675년 12월 30일)는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네덜란드출신 화가이다. 그는 네덜란드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네덜란드의 '황금 시대'에 활동했던 화가였다. 델프트에서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델프트의 베르메르(Vermeer van Delft, 페르메르 판 델프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와 동명영화의 소재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옛 경매 기록상으로는 다른 것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나,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37점으로 이루어진 전체 작품의 규모는 아주 작은 편이다. 베르메르의 첫 번째 작품들은 역사화였다. 하지만 그는 작품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장르화로 알려졌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델프트 시의 전경》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다. 알려진 그림의 숫자가 적었던 관계로 19세기에 다른 미술가의 작품을 잘못해서 그의 작품이라고 결정하는 일들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 규모는 연구자들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 중 현존하는 것은 37점이다. 남은 작품만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1년에 고작 두어 점 정도 그림을 그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것은 베르메르가 예술 시장을 위해서 작업했다기보다는 예술 후원자들을 위해 작업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했다. 특히 11명의 아이를 가진 대가족의 가장이 1년에 그림 2점을 그려서는 부양의 의무를 지킬 수 없으므로, 그는 그림 이외의 다른 밥벌이 수단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1653년 결혼 후에 그가 화가 조합이던 신트 루카스 길드에 등록한 이유도 이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화가를 포함한 예술가·상인·수공인 등은 길드에 등록해야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화가뿐만이 아니라 화상(畵商)으로서 그리고 예술 전문가로서의 이름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생활을 위해 그렸을 것이다.

현존 작품은 거의 대부분 소품들로서 한 두 사람의 가정생활을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그 밖에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베타니아의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이야기를 소재로 그린 그림처럼 성서속의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것도 있고, 불과 2점이지만 풍경화도 있다. 풍경화 중에 《델프트 풍경》(헤이그 국립미술관 소장)은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옛날 카탈로그에서 언급된 몇몇 작품들은 영원히 소실되어 버린 것 같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메이헤런 사건의 여파로 베르메르의 새로운 작품이 발견되어도 전문가들은 별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한편 《델프트의 조망(眺望)》(또는 '델프트 풍경')은 당시 네덜란드의 부국과 원양어업의 전성기를 반영하는듯 회화적 기법의 극치와 평화로움의 절정을 잘 균형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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